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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0년대

기원전 4000년 말기

이집트 및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원시적인 수례와 원통형 바퀴의 발명

기원전 3000~2600

슈메르인과 아카드인의 운반용 바퀴의 발명 및 4륜 마차의 발명

기원전~1500

태고 때부터 썰매를 용도에 따라 사용

기원전~1700

히크소스족(유라시아 대륙)과 이집트인은 가벼운 스포크 휠로 된 2륜의 전차를 발명

기원전~680

카드리가(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경주를 그리이스 올림픽에 채택 로마인들이 피봇식 조향장치 발명

1480년경

인류 최초로 인위적인 동력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벽시계 태엽 자동차라는 것이 정설이다

1630년경

이탈리아 조반비 브랑카는 보일러에서 노즐을 통해 분출되는 증기를 이용한 터빈원리를 발견하고 이 힘으로 구멍난 바퀴를 돌릴 수 있는 메카니즘을 발견하였다

1673년

네덜란드의 호이헨스는 프랑스에서 실린더내의 화약을 연소시키면서 동력을 얻는 화약엔진을 발명

1680년

포르투칼의 벨피스트는 증기를 이용해 1 시간 정도 달릴 수 있는 증기 자동차와 유사한 것을 만들었다

1690년

프랑스의 드니파팡은 실린더의 피스톤이 수증기를 압축하여 왕복 운동하는 대기압 증기엔진을 설계하였다

1698년

영국의 토머스 서베리가 증기의 팽창력과 대기의 압력을 교대로 움직이는 증기엔진을 발명

1712년

토머스 뉴커먼이 서베리의 증기엔진을 더욱 개량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조셉 퀴뇨는 세계 최초로 4인승 3륜 증기자동차 제작성공

1771년

조셉 뇨노의 증기자동차용 라쳇트 기어 구동장치 발명하여 운반 자동차인 파르디에를 제작. C자형 강철 스프링이 장착된 코치형 마차가 유럽에 등장

177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와트는 볼턴과 함께 증기압 조정이 가능한 단일 작동 방식의 증기 엔진을 발명

1690년

1781년 제임스 와트는 윌리엄 머독과 함께 유성기어 발명

1782년

제임스 와트는 원심 거버너를 사용하는 복동 증기엔진을 발명
1800년대

1803년

프랑스의 필립 르봉 당베르상은 가스 공기 예비압축과 불꽃 점화에 의한 가스 엔진 발명

1803년

영국의 리챠드 트레비딕은 자동차용의 고압 증기 엔진을 개발. 사람이 많이 탈 수 있는 차를 만들어 13km/h의 속도로 런던시내에서 주행하였다. 이 것은 동력장치를 이용한 최초의 택시 였다

1805년

영국의 오버디어 엘리오트가 타원형 리프 스프링을 발명. 미국의 올리버 에반스가 수륙 양용 굴삭기 제작

1805년

스위스의 이작크 드 리바는 세계 최초로 4륜차용 전기 불꽃 엔진을 개발

1816년

게오르그 랑켄 스피켈과 루돌프 애커먼이 애커먼식 조향장치 발명

1821년

자동차용 기어 변속장치가 발명됨

1823년

영국의 골드 워즈거니 경이 증기엔진 버스(약 18km/h로 운행)를 발명

1824년

레오나르도 사디 카르노 카르노 기관 이론 발표

1825년

자동차용 유니버셜 조인트가 발명됨

1828년

자동차용 디퍼렌셜 기어가 발명됨. 프랑스에서 증기엔진을 장착한 화물차와 견인차, 이륜차가 등장

1840년

영국에서 증기버스의 개발을 전면 중단

1845년

영국의 로버트 윌리엄 톰슨이 최초의 직물로 된 공기압 타이어 발명

1848년

미국의 존스가 수퍼차져 발명

1850년

철제차축이 발명 되었고, 영국의 코링은 차축 윤활장치를 발명. 납 축전지 발명.
최초의 증기 장갑차 등장

1863년

프랑스의 장 조셉 에티앙르 르노와르가 슬라이딩 밸브를 사용한 복동식 가스 엔진을 발명

1865년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영국정부는 적기조례를 발표.
* 적기조례 : 증기 엔진이 도로를 망가뜨리고 말을 놀라게 한다는 국민들의 반감으로 영국정부가 선포한 조례로 전방 50 야드 앞에서 기수가 주행하는 자동차와 같은 속도로 달려 주변 사람들에게 자동차가 오고 있음을 알리도록 의무화한 제도로 증기 엔진 차량은 최고 속도를 시내에서는 3.2 km/h, 시외에서는 6.4km/h로 제한하고 해가 지기 1시간 전부터 등불을 켜도록 의무화 했다. 길이와 중량의 한계를 엄격히 규제하였다

1866년

루터 형제에 의해 회전 피스톤 컴프레서인 루터 수퍼챠져 발명

1867년

고무로 된 타이어 발명

1868년

독일의 조셉라벨은 석유, 가솔린을 이용해 보일러를 가열시키는 최초의 증기자동차를 만들었다

1872년

조지 베일리 브레이튼이 2 스트로크 방식의 브레이튼 레디 엔진 발명

1873년

프랑스에서 아메드 볼레이가 6인승 증기 자동차 제작

1873년

독일의 니콜라우스 아우구스트 오토는 단기통 4스트로크 화염점화방식의 엔진을 개발

1875년

독일의 마이바하는 플롯기화기를 개발

1880년

베라트가 증기버스를 개량

1883년

독일의 다임러와 마이바하는 칸슈타트의 4스트로크 엔진 연구공장 설립

1883년

프랑스의 알베르드 디옹은 주르주 뷔통과 함께 최고 60 km/h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증기자동차를 제작

1884년

프랑스 들라마르 드부트 빌과 레옹 말랑댕이 가솔린 자동차를 제작

1885년

독일의 다임러와 마이바하는 2륜 가솔린차를 제작

1885년

4스트로크 엔진에 적용되는 코일점화방식 개발

1885년

독일의 로버트 보쉬사 설립되어 자석식 점화장치 생산

1888년

존 보이드 던롭이 공기압 타이어를 개량

1889년

폴머가 전기 우편차를 개발

1891년

다임러와 프랑스의 파날 에 르바소 및 푸조는 다임러 엔진 생산 계약 체결

1891년

벤츠는 에커먼 스티어링을 적용한 빅토리아를 개발

1893년

마이바하가 분사노즐식 기화기 개발

1894년

파리-루앙을 주파하는 최초의 레이스(126km)가 개최됨.
드 디옹이 드 디옹 액슬 발명

1895년

파리-보르도간 최초의 스피드 레이스가 개최(왕복 1200km)
미국 최초의 자동차 레이스 개최(78km)
영국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부레마 등장
프랑스의 미쉐린 형제는 파리-보르도간 레이스에서 자동차용 공기압 타이어(비드 타이어 내층부에 끈을 사용한 카커스 코드를 사용)를 시험

1896년

영국정부는 적기조례를 폐지
프랑스는 미니자동차이며 최초의 공기 주입 타이어를 장착한 보아추레트를 생산
독일의 다임러와 바이마하가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 최초의 트럭을 생산

1897년

마이바하가 파이프 라디에이터 개발. 독일의 루돌프 디젤이 최초의 디젤엔진 개발

1898년

드 뒤옹 븨통사는 3륜 및 4륜 자동차를 개발하여 유럽의 자동차 열풍을 일으키는데 기여
장트의 전기 자동차가 63.18km/h를 기록

1899년

벨기에인인 까뮈 제나지가 프랑스에서 전기 자동차로 105.88km/h의 속도를 기록
1900년대에 접어 들면서
자동차 제조업이라는 종합기계산업이 새롭게 등장하여
자동자의 대중화와 제작 기술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1900년대

1900년

마이바하가 허니컴 라디에이터 발명.
미국의 아메리카 모빌사에서 모빌 증기 자동차 생산.
미국의 대량 생산차로 랜섬 에리 올즈가 올즈모빌 커브드 대시를 생산 1904년까지 11,275대를 판매

1900년

독일에서 번호판 장착이 의무화 됨

1902년

보쉬사는 고전압 자석식 점화장치를 개발
오토 율리우스 비르밤이 8마력의 아도라 자동차를 타고 최초로 알프스를 넘음

1903년

알버트 A 포프가 자동차 기업 연합 창설
고무타이어를 단 트럭이 생산되기 시작
독일의 요셉 폴머가 베를린의 신자동차 회사와 함께 노상 화물 열차(듀르히)를 개발

1904년

오스트리아의 다임러 엔진사의 파울 다임러가 4륜 구동 장갑차를 개발

1906년

지멘스 슈카트의 뮬러 노이사오스가 독립 조향장치를 장착한 뮬러 열차 개발. 그림.
프랑스 우젠느 브뤼에의 차로 버스 운행 시작

1907년

폴 그레츠가 가게나우로 아프리카 횡단에 성공
이탈리아의 시피오네 보르게제 후작이 이타라를 몰고 파리-북경 동서양을 잇는 대륙 횡단에 성공

1908년

윌리엄 크라포 듀런트가 제너럴 모터스 설립
미국의 J. F. 파머가 직물 카커스 타이어 발명

1909년

독일에서 손해배상 책임 보험법이 제정
1910 ~ 1930년대

1910년

트럭에 지붕을 씌워 생산하기 시작
영국의 비커스 제작소의 제임스 맥쿠니가 연료분사펌프제조

1911년

찰스 예일 나이트가 더블 슬라이딩 컨트롤 밸브엔진(사일런트 엔진) 개발
한스 니벨이 만든 브리첸 벤츠가 운전한 봅 바만이 228.1km/h를 돌파
미국에서 바테리 점화장치 생산

1913년

포드사는 벨트 컨베어 시스템을 도입하여 서민용 자동차인 포드 T형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포드 T형은 당시 다른 자동차들이 1천 달러 정도인 데 비해 440달러에 판매됐다

1914년

미국의 에드워드 고엔 버드는 강철바디를 생산

1920년

영국의 리카르도가 리카르도 헤드 발명.
프랑스의 그레고와르와 이탈리이의 카스타니아가 유선형 차체를 디자인.
1921년 독일의 에드문트 룸플러는 물방울 자동차(드롭펜 바겐, Cd 0.28), 미드쉽 엔진을 제작

1922년

유럽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오스틴 세븐을 생산시작
수퍼챠저를 장착한 메르세데스 등장. 그림
오스트리아의 야라이가 유체역학적 시작차를 제작. 그림

1923년

한스 레드윙커가 스윙액슬을 장착한 타트라 샤시 개발

1924년

독일의 초소형차 몰모빌 생산
독일의 MAN에서 디젤트럭 생산

1926년

다이믈러와 벤츠사가 합병하여 다이믈러 벤츠 설립

1931년

미국 크라이슬러가 플로팅 파워 엔진지지장치 개발
폴크스바겐. 1940년대 모델. 독일

1936년

다이믈러 벤츠는 최초의 양산 디젤 승용차를 발표
1940년대~

1940-1950

194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세계를 휩쓴 전쟁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지만, 미국은 자동차에 군사 기술을 적용시켜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1941년 미국 국방성의 요청으로 윌리스사와 포드사가 만들어낸 네바퀴굴림(4륜 구동) 지프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튜브리스 타이어 등장

1950-1960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심한 불황에 빠진 유럽 각국은 경제적인 국민차를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였다. 독일의 폴크스바겐 비틀, 영국의 모리스 미니, 프랑스의 르노 4CV 같은 차가 이때 만들어졌다. 특히 독일의 포르쉐 박사는 1954년, 전쟁 전 히틀러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폴크스바겐 비틀의 개량형을 만들어냈는데, 20년 동안 1,900만대를 생산하여 국민차의 지표를 세웠다

1960-1970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데다가 전쟁으로 경제부흥을 이룩한 미국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크고 강하고 화려한 미국식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데 열중했다. 특히 전투기의 날개 모양을 본떠 만든 '테일 핀 스타일'캐딜락은 롤스 로이스,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과 함께 세계 3대 고급차로 명성을 날렸다

1970-1980

1970년대는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로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이 세계 경제를 뒤흔든 시기였다. 자동차산업, 특히 미국의 대형 자동차산업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경제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등장하였다. 유럽과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개발된 소형차들을 연료 절약형으로 개선하고, 실내공간을 넓히는 한편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 앞바퀴 굴림차(전륜구동)를 만들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다

1980-1990

석유파동 뒤 세계경제가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자동차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자동차 역사를 주도해 온 선진국의 자동차회사들은 노동력이 싸고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겼다. 결국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이 값싼 노동력과 결합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더 넓은 지역에 자동차를 팔 수 있게 됐다. 세계가 함께 만들고 함께 타는 '월드카'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1990-2000

인류가 컴퓨터를 만든 이후,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해서, 자동차 역시 컴퓨터 덕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진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른바 인공지능 자동차. 안전장치가 자동화된 것은 물론, 컴퓨터가 알아서 달리는 무인주행 네비게이션 장치, 고장을 알아서 판단하는 시스템도 개발되었다.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인간 중심의 다양한 자동차,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자동차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대

자동차는 한 세기 동안 인간의 발 노릇을 하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에너지를 마구 쓰는 바람에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고 대기를 크게 오염시켜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21세기에는 수소나 전기, 천연가스와 같은 대체에너지를 이용해 환경오염을 줄여나갈 뿐 아니라, 더욱 인간적인 자동차, 그리고 첨단과학을 동원해 더욱 편리한 기능을 갖춘 자동차가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1900년대

1903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에 기념으로 미국 공관을 통해 "포드 A형 리무진" 승용차 1대를 친견식 의전용 어차로 들여온 것이 우리나라 최초로 등장한 자동차였다. 그 후 철도 못지 않은 교통수단으로 인식되어 당시의 거부들이 사업의 일환으로 승용차, 버스 등을 도입하여 한국에 운수업이 시작되었으며, 도입 차량이 늘어나 일본인에 의해서 운영되던 정비공장이 당시 한국자동차 기술의 전부였다

1905년

자가용을 소유했던 최초의 민간인은 제3대 천도교조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으로 이미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1910년대

1911년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인이 포드 8인승으로 마산-삼천포간을 운행하였다. 요금은 마산-진주간이 3월 80전, 삼천포-진주간이 1원 30전이었다. 당시 쌀 한 가마가 4원 하던 시절이었다

1913년

우리나라 최초의 택시로 서울의 이봉래씨가 포드차를 2대 구입해 서울에서 시간제로 임대, 영업한 것이 그 시초이며, 당시의 고관이나 기생 등이 주로 이용하였다

1913년

서울에서 이봉래씨와 일본 청년 곤도 그리고 장사꾼 오리이 3인이 합자해 20만원으로 첫 자동차회사를 세웠다
그해 최초의 자동차학원을 용산에 설립했고 10명을 교육했다. 이들 중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봉래씨의 아들 이용문씨가 운전을 배워 우리나라 운전면허 1호가 되었다

1914년

서울에서 이봉래씨와 일본 청년 곤도 그리고 장사꾼 오리이 3인이 합자해 20만원으로 첫 자동차회사를 세웠다
오리이 자동차 상사라는 승합 자동차 회사가 처음으로 전국 9개 노선을 허가받아 자동차 영업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번호판으로 검은색 철판에 흰 글씨로 오른쪽에는 등록한 도시이름을 한문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고 왼쪽에는 경찰이 준 두 자리 아라비아 숫자를 기재해 앞에만 달았다

1914년

영친왕 이강공이 미국제 오버랜드를 들여왔을 때, 1915년 윤권이라는 사람이 이 차를 운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운전사가 되었다

1919년

우리나라 최초 여성 운전자로 전주 태생의 최인선씨가 23세 되던 해 경성자동차 강습소에서 면허를 취득하였다
1920년대

1928년

우리나라 최초의 시내버스로 경성부 청에서 서울 시민을 위해 20인승 버스 10대를 들여와서 서울 시내 주요 간선도로를 운행하게 하였다
1930년대

1930년대 말

일본군국주의를 위한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자동차 항공기 부품 생산을 위해 조선 이연, 조선타이어, 조선 베아링, 경성스프링 등의 회사가 설립되었다

1931년

목탄차가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 육군성에 의해 부족한 휘발유를 대신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933년

서울 조선운송주식회사 사장 다케시마가 휘발유엔진 트럭을 목탄차로 개조, 실용화 했다
1940년대

1940년

국내에 1,000여대가 넘는 목탄차들이 운행됐다. 이 차는 보일러에다 숯을 가득 채우고 불을 붙인 다음 풀무질을 해야 움직였다. 고개라도 만나면 올라가기 전에 다시 풀무질을 해야 하거나 뒤에서 사람들이 밀어올려야 할 만큼 힘이 약했다
1950년대

1950년

정부는 자동차부품 산업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였으나 6.25사변으로 시행하지 못하였고, 전쟁 후 미군의 군수용 차량을 망치 하나로 개조하여 버스나 트럭을 만드는 재생자동차 산업이 자연스럽게 수요에 의해 발전하였다

1950년 3월

자동차 부품공업 육성을 위해 AID 차관을 들여오는 등 노력했으나 6.25사변으로 거의 실행하지 못하였다

1955년 2월

설립 된 신진공업(현 대우자동차)은 부산에서 25인승 버스를 만들어 호황을 누렸으며 그때 공장 주위에 모였던 부품가게들은 아직도 부산 서면 일대에 부품상가를 이루어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숫자인 2500대 이상의 버스를 생산했으며, 6.25 직후 부산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신진공업이 우리자동차 산업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55년 5월

서울에서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씨가 미군으로 불하받은 지프의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을 이용하여 드럼통을 펴서 만든 첫 지프형 승용차인 "시발"을 제작하였다. 우리 최초의 고급 승객을 위한 승용 개념의 자동차이다
1960년대

1962년 1월 29일

자본금 1억 원으로 부평에 공장을 세운 새나라 자동차(현 대우자동차)로 일본의 닛산 자동차와 기술 제휴를 해 SKD(부분조립상태) 상태의 블루버드를 도입해 부평공장(현 대우자동차)에서 조립했다. 이차는 비록 조립이었지만 우리 땅에서 생산된 최초의 승용차였다

1963년 7월

부평에 공장을 세운 새나라 자동차 공장은 생산을 중단했다

1966년 5월

신진 공업사(현 대우자동차)가 일본 도요다의 코로나 승용차를 도입하여 간단한 부품을 국산화하여 완전 조립 방식(CKD)으로 차를 조립 생산하게 되었다

1967년 4월

국내최초의 자동차정비학원인 한국자동차정비학원 설립

1967년 7월

현대자동차 설립
1970년대

1975년 12월

현대자동차는 국내 최초로 설계부터 생산까지 국산기술로 만든 첫 고유 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개발하였다. 이 차는 오일 쇼크로 연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당시 가장 큰 승용차 소비자였던 택시시장을 석권함으로써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초석이 되었으며 한국 자동차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많은 기록을 남겼다

1976년 7월

현대자동차 포니- 에콰도르에 5대 수출

1976년

신진자동차와 미국의GM이 합작하여 GMK를 세웠으나 미국차를 기반으로 한 이 회사의 제품은 연비 때문에 포니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후에 새한자동차로 회사명이 변경된 뒤 1983년 대우자동차로 통합되었다
1980년대

1981년 2월 28일

당시 재벌의 중복투자 제한방침에 따라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가 발표되었다. 당시 재정 위기에 몰려 있던 기아자동차는 봉고라는 차를 만들어 회사가 위기를 넘기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
- 승용차, 픽업 : 새한, 현대
- 1톤~5톤 트럭 및 라이트버스 : 기아
- 특 장차 : 동아
- 2륜차 : 기아, 대림 합병, 효성(2원화)
- 방산용 차량 : 아시아

1982년 2월

현대자동차는 5도어 해치백 스타일의 전륜구동방식인 "엑셀"을 생산 판매 하였다

1984년

단일 차종으로서는 처음으로 포니가 50만대 생산을 돌파하였다

1984년 9월

자동차 등록대수가 90만대를 돌파하였다

1985년 1월 17일

정부는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를 87년 해제키로 결정하였다

1985년 5월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때부터 자동차의 대중화에 따른 안전도에 신경을 쓰는 설계가 준비되고 크고 안전한 중형차 제작도 우리의 기술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1987년 1월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를 일부 해제하여 기아의 승용차 생산을 재개할 수 있게 됨

1987년 1월

자동차 전면에 이중 안전접합유리 사용이 의무화되었다

1987년 3월

한국 최초의 자동차 경주가 진부령-용평 구간에서 도로 경기로 열렸다. 곧 이어 영종도에서 그랑프리 코리아 레이스란 트랙 경기가 시작되었다

1987년 5월 1일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1989년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되어 완전 경쟁체재에 들어갔으며 이 조치는 향후 90년대 우리 자동차가 세계 속의 자동차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1991년 5월 14일

대우조선 (현 대우자동차)는 국민차 개념의 국내최초의 경승용차 티코를 만들어 더욱 많은 국민들이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단계 더 성숙된 자동차문화를 국민들이 체험하게 되었다

1992년 10월 10일

자동차 보유대수 500만대를 돌파하였다

1995년 5월(5/4~10)

제1회 서울모터쇼를 개최를 시작으로 한국자동차는 그 역사를 해외에 서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현재 해외의 많은 생산 거점과 미국시장에서 월간 4만대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리게 되었다

1995년 7월 27일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가 800만대를 돌파

1996년 6월 24일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가 900만대를 돌파

1997년 7월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0만대를 돌파

1999년 10월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가 1,100만대를 돌파
(10월말 기준 등록대수 : 11,027,519대)